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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by 윤새싹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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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젊은 남자의 초상

보티첼리가 처음 그림을 배운 것은 필리포 리피에게서 인것으로 추정되고, 베로키오와 폴라이월로부터 사실주의를 배웠습니다.

초기에는 《포르테차》,《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등에서 자연연구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그 미묘한 곡선과 감상적인 시정에 일찍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후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 학자, 시인들의 고전 부흥의 분위기와 신 플라톤주의의 정신에 접하고, 특히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 고취되어 그린 《프리마베라(봄)》은 시적 정신과 자연연구의 아름다운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478년 메디치가에 대한 파치 음모사건 범죄자가 처형되는 벽화제작을 위촉받아 벽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은 카스타뇨의 알비치 음모자 처형도의 영향을 받은 듯 하나 그에 대한 자세한 진위는 알 수 없습니다.
1480년 온니산티성당에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벽화에서는 카스타뇨의 엄격한 리얼리즘의 영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카스타뇨의 영향은 일시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1481년 산마르티노 성당에 그린 《수태고지》, 《마니피카토의 성모》 등을 보면 감미롭고, 감상적인 표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비의 강탕

1481년~1482년까지는 보티첼리가 총감독이 되어 바티칸궁전 시스티나예배당의 측벽 장식을 맡았고, 1482년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약 10년동안 사실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화경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성모자와 두 성 요한》, 《비너스와 마르스》, 《비너스의 탄생》 등이 그 무렵의 작품입니다.

이 후의 작품인 《수태고지》 등을 보면 작품에서 점차 신비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1491년 도미니크회의 영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성마르코수도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메디치가의 이교주의적 정책과 피렌체의 퇴폐적 세태를 격렬한 예언자적 설교로 공격하기 시작하자, 보티첼리는 그 설교에 매혹되어 신비적인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고, 단테의 《신곡》의 삽화에 열중합니다.

《피에타》, 《게세마네 언덕의 기도》 등의 작품이 그런 경향을 보였고, 1496년 예언자적 신비주의로 변모하였고, 1501년 《신비의 강탄》 등의 작품에서 신비적 환상으로 가득 찬 작품을 그렸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작품

비너스의 탄생 (1485년경, 우피치 미술관 소장)

비너스의 탄생

16세기의 화가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비너스의 탄생》은 늦어도 1540년경부터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 소유인 카스텔로의 시골 별장에 보티첼리의 또다른 대표작인 《프리마베라(봄)》과 함께 소장되어 있었고, 이를 근거로 상당한 기간 동안 학자들은 두 그림이 한 쌍을 이루며 1480년대 당시 별장의 소유자였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주문에 의하여 함께 제작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로렌초의 1499년 재산 목록에 《비너스의 탄생》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프리마베라(봄)》이 제작 당시에는 보티첼리의 다른 그림과 함께 로렌초의 피렌체 시내 저택을 장식했다는 문헌적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비너스의 탄생》의 제작 배경은 다시금 모호해졌습니다.
그래도 작품에 등장하는 월계수 및 오렌지 나무는 메디치 가문의 상징들이고, 1540년에 메디치 가의 소유였으므로 《비너스의 탄생》의 주문에 메디치 가문의 일원이 관여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미술사적 견해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먼저 당대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이론을 시각화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15세기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대부분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아 회원들이었습니다. 메디치가 소유의 별장에서 자주 열렸던 이들의 회합에 보티첼리 역시 꾸준히 참석하면서 그곳의 지적 분위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과 15세기 신플라톤주의 학자들은 비너스의 본성을 인간에게 육체적인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지상의 여신'과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랑을 고취시키는 '천상의 여신' 이 두가지의 측면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비너스를 우주의 조화에 대한 완벽한 인격화로 보았음,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이러한 당대의 사상을 시각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세부 묘사,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성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데, 신체 표현에 있어 양감이나 모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비레나 자세가 왜곡되어 있는 것 또한 보티첼리 작품들의 일반적인 특징 입니다.

프리마베라(봄) (1478년경, 우피치 미술관 소장)

프리마베라(봄)

메디치 가문에서 주문한 보티첼리의 첫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문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설은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 후원자로서 '위대한 자 로렌초'라는 칭호를 받은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촌인 피에르 프란체스코의 아들 로렌초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문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설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가 자신의 카스텔로 별장에 걸기 위해 주문했다는 설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당시 피렌체의 대표적인 시인인 안젤로 폴리치아노가 쓴 《회전 목마의 방》이라는 시를 그림으로 옮긴 것으로 고대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각 인물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가장 오른쪽에서 몸이 얼음처럼 시퍼렇게 칠해져 공중에 떠 있는 인물이 보이는데, 이 인물은 겨울을 상징하는 서풍 제피로서 요정 클로리를 붙잡으려하고 있습니다. 요정은 서풍에게 잡히는 순간 꽃을 상징하는 플로라로 변신할 운명인데, 셋째 여인이 바로 클로리가 변신한 플로라 입니다. 플로라는 꽃의 상징답게 꽃과 꽃잎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동산에 꽃을 뿌리고 있습니다.

화면 한 가운데 이는 여인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로 다른 인물들보다 약간 뒤쪽에서 정면을 향해 서있고, 그 위쪽에는 아들인 큐피드가 눈을 가린 채 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여인들은 비너스의 세 시녀인 삼미신 입니다. 삼미신은 로마 시대를 비롯하여 고대 회화에 이미 등장한 인물인데,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등장하여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 혹은 여인의 나체를 그리기 위한 소재로 화가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화면 가장 왼쪽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 인물은 소식을 전해주는 헤르메스입니다. 헤르메스는 상인들의 수호 성인이기도 해서 상업을 중요시 여긴 피렌체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아기에 등장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주제면에서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종교화에서 벗어나 고대 신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화화의 폭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비너스와 마르스 (1483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비너스와 마르스

《비너스와 마르스》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린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 앞에 전쟁의 신 마르스가 무장을 벗을 채 곯아떨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비너스의 매력에 취해 잠든 마르스의 모습은 전쟁을 넘어서는 사랑의 선한 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사랑의 여신'을 찬미하는 전통은 고대 로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둘의 주변을 보면 4명의 시타로스가 소라고둥을 불며 마르스의 갑옷과 투구, 창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두산백과)'
네이버 미술백과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네이버 미술백과 '봄(프리마베라)(Primavera)'
네이버 지식백과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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