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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 -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집안이 가난한 양복점이어서 13세부터 도자기 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거이 뒤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J.A.와토나 B. 부셰 등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가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4년후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을 하게 되고, 르누아르는 부채그림이나 점포장식을 했습니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모네, 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되고, 피사로, 세잔, 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 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초기에는 코모, 들라크루아, 쿠르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07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 2021. 7. 10.
살바도르 달리 - 기억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격한 성품 탓에 1926년 퇴학을 당하고 맙니다. 그는 일찍이 인상파나 점묘파, 미래파의 특질을 터득하고 입체파나 형이상회화 등의 감화를 받으며 작풍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25년경부터는 심기일전하여 정밀한 세부묘사를 향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설에 공명,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자상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유하였습니다. 이듬해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 브르통에 의해 정식으로 이 파의 일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 스스로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수법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표.. 2021. 7. 4.
폴 시냐크 - 우산을 쓴 여인 폴 시냐크 몽마르트의 중심부인 피갈 광장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시냐크는 자연스럽게 화가와 모델, 화상들과 가까이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환경은 그를 건축가와 화가의 두 갈림길에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특히 1880년 클로드 모네의 전시를 관람한 후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 집니다. 초기에 시냐크는 아스니에르의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습닌다. 이때 카미유 피사로와 조르주 쇠라를 만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의 초청으로 시냐크는 1884년 제1회 아아데팡당전에 참가했습니다. 1886년에는 8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인상주의 전시회에 쇠라와 함께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이 전시를 본 미술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들의 작품을 신인상주의라는 말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시냐크는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 2021. 6. 27.
조르주 쇠라 - 아스니에르에서 멱 감는 사람들 조르주 쇠라 조르주 쇠라는 1878년 파리의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앵그르의 제자 H.레만의 지도를 받다가, 다음해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브레스트의 해안에서 병역을 마쳤습니다. 그는 파리로 돌아와 고전 작품을 연구하는 소묘에 힘을 쏟았고, 셔브뢸, 헬름홀츠 등의 새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1881년경 들라크루아의 작품의 색채대비와 보색관계를 해명한 글을 발표하여 세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쇠라는 이러한 이론을 창작에 적용하여 점묘화법에 의한 최초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완성하였는데, 1884년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하였으나 앙뎅팡당전에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평생 화우인 시냐크와 사귀게 되었다고 하죠. 1885년 《그랑드자드섬의 일요일 오후》를 제작하여 다음해에..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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