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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by 윤새싹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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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 초상화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프란시스코 에레라의 공방을 거쳐서 열두살에는 화가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작업실과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벨라스케스는 1617년에 독립 화가로서 일할 세비야 길드의 면허증을 얻게 됩니다. 그는 이론가와 인문주의자로서 유력한 친구들을 둔 파체코로부터 문화적 교육을 받았고, 지적인 르네상스 사상들을 소개받았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초기 작품들로는 종교화와 풍속화가 있습니다. 스페인은 풍속화의 역사가 짧았고,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의 물장수》와 같은 작품들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불어 넣으며 새롭고 정직한 사실주의를 추구했습니다.

 

1622년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새로운 왕 펠리페 4세의 후원을 얻고자 마드리드로 향했으나 실망을 안은채 돌아왔다가 1년 후에 왕의 초상화를 그려 궁정화가로 공직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마드리드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평생 궁정화가로 지냈습니다. 펠리페 4세는 심지어 자신의 초상화를 벨라스케스 외에는 아무도 못그리게 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1628년에 마드리드를 방문한 페테르 파울 루벤스에 의해 이탈리아 미술에 흥미가 생겨 1629년부터 1631년까지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되었고, 1649년부터 1651년까지 재차 방문합니다. 이러한 이탈리아로의 여행은 티치아노와 같은 미술가들의 채색법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가들의 조각적인 힘을 벨라스케스가 느끼게 된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들

시녀들(라스 메니나스, 펠리페 4세 일가) (1656년경, 프라도 미술관 소장)

시녀들 (라스메니나스) © The Bridgeman Art Library - GNC media, Seoul

《시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표보자면, 왼족에서부터 차례대로 이젤 앞의 벨라스케스 자신과 시녀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데 사르미엔토, 마르가리타 공주, 다른 시녀인 도냐 이사벨 데 벨라스코, 우측 전경에 난쟁이 마리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가 있습니다.

 

그 뒤에 서 있는 두사람은 왕비의 시녀장인 도냐 마르셀라와 확실치 않지만 왕비의 수행원인 돈 디에고 루이스로 추정됩니다. 배경 중앙부의 좌측에는 거울에 비친 마리아나 왕비와 국왕 펠리페 4세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계산 위의 인물은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 입니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제작되는 벨라스케스 초상화의 전형을 잘 모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는 서로 다른 신분에 속한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 직업 및 외형적 특성들을 정확하게 옮기면서도 이들이 자신이 설정한 체계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인물간의 관계에 있어서 기반이되는 태도와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시녀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의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존경어린 태도와 다정한 친밀감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한편, 거울과 열린 문을 통해 공간을 확장시키는 방식은 벨라스케스가 다른 장르의 그림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1650년,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인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본명은 지오반니 바티스타 팜필리로 1626년부터 1630년까지 교황의 대사 자격으로 마드리드에 머무르면서 당시 궁정화가로 일하던 벨라스케스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탈리아로 돌아가면서 벨라스케스가 직접 혹은 그의 공방에서 제작한 스페인 왕실 일원들의 초상화 7점을 가져갔습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은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를 두 번째로 방문했던 1650년 8월 13일에 그려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인이 아닌 화가가 교황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을 뿐 아니라 1644년 교황으로 선출된 팜필리는 소수의 화가들에게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벨라스케스에게 이러한 기회를 준 것은 그가 벨라스케스의 실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기 때문입니다. 초상화가 완성 되었을 때 교황은 '지극히 생생하다'고 감탄하면서 감사의 표시로 벨라스케스에게 상당한 액수의 보수를 지불하고자 하였는데,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외교 사절로서 이탈리아를 방문했던 자신의 입장을 감안해 이를 사양했다고 합니다. 이에 교황은 보수 대신 금으로 된 목걸이와 교황의 상패를 벨라스케스에게 하사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501 위대한 화가, 2009. 8. 20., 스티븐 파딩, 위키미디어 커먼즈, 더 브릿지먼 아트 라이브러리)'

네이버 지식백과 '시녀들(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or The Family of Philip IV)'

네이버 지식백과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Portrait of pope Innocent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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