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렘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by 윤새싹 2021. 6. 13.
728x90
반응형
SMALL

렘브란트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광장에 있는 렘브란트 동상

그는 어릴 적에 일찍 학교 교육을 그만두고 화가로서 도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역사화가 야코프 이삭스존 반 스바넨부르크 밑에서 3년간 배운 후, 암스테르담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네덜란드에서 손꼽히는 역사화가 페테르 라스트만 밑에서 짧게 도제 생활을 했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을 익힌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공방을 열었고, 많은 자화상들을 그렸습니다.

렘브란트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여 물감의 농도와 빛의 역할을 실험했습니다. 키아로스쿠로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기법으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작품들에서 처음 사용되어 유명해진 기법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밝은 부분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그 주위와 배경에 어두운 부분이 넓게 배치되어, 마치 어둠 속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밝은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표현하던 주제 문제에 있어서의 엄격한 형식성을 제거함으로써 이와 같은 방법을 자ㅣㄴ만의 전유물로 만들었고, 인간애라는 숭고한 의식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스며들게 했습니다. 렘브란트는 비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주목하고, 작품에 일상생활을 그렸으며, 종교적인 작품에서조차 이러한 자신만의 특징을 유지했습니다.

렘브란트 작품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소장)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해부학자이며 강사였던 튈프 박사는 1632년 1월에 두번째로 외과의사조합에 소속된 일곱 명의 의사 앞에서 공개적인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때 첫 번째 집단초상화였습니다.

왼쪽 여섯 사람의 머리가 화살 구도를 이루어 튈트 박사의 오른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참가 의사들의 명단을 들고 있는 일곱 번째 남자는 튈프 박사와 나머지 인물들을 구성적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렘브란트는 튈프 박사가 근육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시체의 팔뚝을 절개하는 순간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볼때는 이 그림은 부정확하지만 렘브란트는 이들이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야간순찰(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의 중대) (1642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야간순찰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야간순찰'의 장면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한낮에 일어나는 일로, 부관의 명령 아래 부대가 출격하는 장면입니다. '야간순찰'이라는 명명은 1940년까지 그것을 덮고 있었던 어두운 광택 때문에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민병대의 구성원인 대장 프란스 반닝 코크와 대원들이 작품 제작비용을 모금하여 렘브란트에게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새롭게 지어진 그들의 회의실에 걸기 위해서 이 그림을 의뢰한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1638년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치의 암스테르담 방문을 기념하여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렘브란트에게 이 그룹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그 스타일과 엄청난 크기로부터 바로크양식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큰 그림이었으나 일부분을 잘라 그림의 크기를 줄여서 부대가 배경의 큰 아치 통로를 통해 걸어와 중앙에 이르게 되는 장면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많은 인물들 가운데 부관과 소녀는 환한 빛 속에 있습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머리만 조명을 받은채 모두 어둠 속에 있는데 이렇게 햇빛과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렘브란트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34세의 자화상 (164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34세의 자화상

이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1640년에 그린 자화상 입니다. 이 작품은 그 수많은 자화상들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풍의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베레모를 쓴 채, 의연한 자세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로 손꼽혔던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성공을 세상에 알리고, 동시에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렘브란트는 라파엘로의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의 초상》, 티치아노의 《한 남자의 초상》의 영향을 받아, 이와 유사한 풍의 초상화를 훌륭하게 완성해 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적절한 빛의 명암 표현이 가마되어 있는 얼굴 표정은 그의 감정과 성격, 가치관 등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성공한 화가를 상징하는 듯한 값비싼 옷 차림새에 비하여, 그의 표정은 거만하거나 자신감에 차 있기보다는 오히려 겸손하고 온화해 보이는데, 이는 실제의 렘브란트의 모습과도 흡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드로잉으로 자화상을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 렘브란트는 자아성찰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501 위대한 화가, 2009. 8.20., 스티븐 파딩, 위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2007. 8. 20., 스티븐 파딩, 하지은, 한성경, 제프 다이어. 비피케이)
네이버 지식백과 '야간순찰(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의 중대) (The Nightwatch) )
네이버 지식백과 '34세의 자화상(Self Portrait at the age of 34) )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