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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냐크 - 우산을 쓴 여인

by 윤새싹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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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냐크

아비뇽 교황청

몽마르트의 중심부인 피갈 광장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시냐크는 자연스럽게 화가와 모델, 화상들과 가까이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환경은 그를 건축가와 화가의 두 갈림길에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특히 1880년 클로드 모네의 전시를 관람한 후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 집니다.

 

초기에 시냐크는 아스니에르의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습닌다. 이때 카미유 피사로와 조르주 쇠라를 만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의 초청으로 시냐크는 1884년 제1회 아아데팡당전에 참가했습니다. 1886년에는 8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인상주의 전시회에 쇠라와 함께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이 전시를 본 미술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들의 작품을 신인상주의라는 말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시냐크는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색채와 광성을 다루는 화가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점묘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시냐크는 1887년 아방가르드 그룹 '20인회'가 주최한 브뤼셀 전시회에 쇠라와 함께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1890년 이 그룹의 정식회원이 되었고, 20인회에 합류한 최초의 외국 화가였으며, 국외로 점묘주의를 전파했습니다. 1891년 쇠라가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시냐크는 그 뒤를 이어서 점묘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시냐크는 수차례 연구 여행을 하였고, 점묘법을 다양하게 실험했습니다. 1890년대에 생 트로페를 여행했고, 1907년에는 베네치아와콘스탄티노플을 돌아보았습니다. 1913년 앙티브에서는 더욱 강렬한 색조로 풍부한 색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점묘주의의 과학적인 엄격함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감정적인 가치에 좀 더 많은 공간을 할애했습니다. 그의 색채 연구는 야수주의의 탄생과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1908년 시냐크는 앙데팡당전의 위원장이 되어 1934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으며, 집필활동과 판화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시냐크의 작품

우산을 쓴 여인(1893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우산을 쓴 여인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양산을 들고 있는 여인은 카미유 피사로의 먼 친척인 베르트 로블레입니다. 1880년 만나 그때부터 시냐크는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이 그림을 그리기 몇 달 전인 1892년 11월 7일 시냐크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시냐크가 신인상주의의 방식으로 완성한 초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로 그와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린 연작들이었죠. 시냐크의 아내였던 베르트를 그린 이 작품이 가장 마지막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녹색과 대비되는 주황색이나 빨간색, 노란색에 대한 보라색처럼 색의 병치를 통한 대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원근법이 드러나지 않아 깊이나 입체감을 통한 환영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산으로 인하여 얼굴에 그림자로 양감이 느껴질 뿐입니다. 

 

시냐크의 이러한 색의 병치는 쇠라와 함께한 신인상주의의 기법으로 보다 순수하게 색을 표현하고자 한 두 화가의 노력이 결실로 이를 통하여 형상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물감을 섞지 않고 시각의 효과를 그대화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우물가의 여인들 (1892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우물가의 여인들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절친했던 쇠라가 1891년 갑자기 사망하자 시냐크는 그 이듬해 불안감을 담아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가 느낀 불안감은 화폭에 아주 기묘하게 표현이 되었고, 원칙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었습니다. 신인상파 화가들을 공공연하게 비판했던 화가 폴 고갱은 이 그림을 보고 '바닷가에 우물이 한 개 있다. 마치 색종이처럼 화려하고 얼룩덜룩한 줄무늬 옷을 입은 몇몇 파리 여인들이 말라버린 우물에서 그들의 굶주린 욕망을 채워줄 물을 찾고 있다.'고 적대적인 감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시냐크가 생 트로페라는 지중해의 작은 항구마을을 발견하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1891년 이 마을을 처음 찾은 이후로 일 년에 몇개월씩 이곳에서 지내며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쇠라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듯 싶습니다. 쇠라는 《서커스》를 그릴 때 다분히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영감에 이끌려 그림의 원근법을 변형시켰는데, 그냐크도 보이는 대상에서 멀어지듯 그리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또 위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정적 구역은 캔버스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는 동적인 선과 대조를 이루며, 이 두 부분은 꾸불꾸불하게 비스듬히 그려진 길로 구분됩니다. 

 

시냐크는 모델이 되었던 《서커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주기 위해 그려졌지만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빨간 부표, 생트로페 (1895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빨간 부표, 생트로페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항해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폴 시냐크는 1892년생 트로페 근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항구의 풍경에 매료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의 높은 집들과 색색의 작은 범선들은 이때부터 그에게 주된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특히 시냐크의 이 작품이 발표된 이래로, 생 트로페는 화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지역으로서 풍경에 대한 많은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이 작품은 1892년 이후 변화된 시냐크의 회화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분할주의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억압적인 신인상주의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오히려 꼼꼼한 작은 점들을 사용하기보다는, 좀 더 큰 터치를 구사하여 작품 전반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으며, 나아가 표현성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작품 이전에 그린 수채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시냐크는 여전히 색채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면에 떠 있는 빨간 부표의 물 위에 묘사된 그림자는 여러개의 터치로 나누어져있고, 이 그림자에서는 특히 청색과 주황색이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그 대비 효과는 흰색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폴 시냑(Paul Signac)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우산을 쓴 여인(La Femme à l'ombrelle)'

네이버 지식백과 '우물가의 여인들(Femmes au puits, ou Jeunes Provençales au puits)'

네이버 지식백과 '빨간 부표, 생 트로페(La Bouée rouge, Saint-Trop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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