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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by 윤새싹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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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자화상 (출처 : corel)

고갱은 1848년에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1854년 고갱과 그의 가족은 프랑스로 돌아와서 오를레앙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17세 무렵에 고갱은 견습 도선사로 상선을 타고 여러곳을 여행하고, 1872년에 파리로 돌아와 증권거래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고갱은 덴마크 출신의 메테 소피 가드와 혼인을 한 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직접 그리고 했다고 합니다.

 

1882년이 되어서는 프랑스 주식시장이 붕괴 되면서 다니던 증권거래소에서 실직을 하게 된 고갱은 전업화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코펜하겐의 처가에서 잠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1885년 파리로 돌아와 도시생활에 지친 고갱은 1886년 브르타뉴의 퐁타방으로 가서 작품 작업에 전념합니다.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 화풍의 큰 전환을 보여줬습니다. 

 

1888년 고갱은 파리에서 알게 된 반 고흐의 초청으로 아를에서 함께 살았지만 반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으로 아를을 떠나게 됩니다.

 

1891년에 고갱은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납니다.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와 원시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원주민 소녀 테하마나와 동거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1893년 가난과 외로움에 지쳐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미술은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맙니다.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돌아갔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기도 마저 합니다. 

1901년에는 마르키즈 제도로 거처를 옮겼고, 1903년에 사망합니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1891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이 자화상은 폴 고갱이 1891년 4월 타히티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거울 맞은 편에 서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업하였다고 합니다. 

평행한 붓터치와 고르게 분포된 빛 효과 덕분에 그의 모습은 자신 있게 그려졌고, 야성적인 표정도 강조되었습니다.

 

고갱의 뒤에는 그가 1889년 완성한 두 점의 작품이 그려져 있는데, 좌측에 <황색 그리스도>와 우측에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 항아리>입니다.

<황색 그리스도>의 일부분이 거울에 반사되어 좌우가 바뀐 모습입니다. 당시 이 작품은 고갱에게 1890년 겨울에 숙식을 제공해 준 친구인 에밀 슈페네커의 아틀리에에 있었는데, 그와 고갱이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초상화를 완성하기도 전에 서둘러 떠났다고 합니다.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 항아리>는 1890년애 에밀 베르나르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후 슈페네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합니다.

 

 

 

타히티의 여인들 (1891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타히티의 여인들 &copy;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1891년 고갱은 프랑스를 떠나 열대 지방에 머물며 창작 생활을 하기도 결심합니다.

고갱은 자신의 영감이 될 만한 새로운 소재를 찾는 중이었는데, 여러 곳의 여행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그 당시 프랑스의시민지가 되었던 타히티를 최종적으로 선택합니다.

 

그는 그 여행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못했습니다. 타히티는 더 이상 뱃사람과 작가들이 찬양하던 그런 곳이 아니었고, 전통 원주민인 마리오족이 진보된 서양 문명에 억눌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타히티의 여인들>에서도 강제로 들어온 새로운 풍습과 전통의 충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 여인은 허리 아래로 흰 티아레 꽃 무늬가 장식된 '파레오'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귀에는 옷의 무늬와 같은 생화가 꽂혀 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고갱의 동반자로서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채 움츠러든 것처럼 보입니다. 목까지 올라온 이 '선교사 원피스'는 몸의 형태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데,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입니다. 

 

작품속 그녀들에게서는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정면을 향한 여인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고, 멍한 시선은 어딘가를 향해 있습니다.

 

 

 

 

알리스캉 풍경 (1888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알리스캉 풍경 &copy;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프랑스 남부의 미디 지방에 아틀리에를 만드는 것을 꿈꾸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절실한 부탁을 받은 폴 고갱은 1888년 10월 23일, 퐁타방을 떠나 반 고흐를 만나러 아를 지방으로 가게 됩니다. 

이 작품은 고갱이 아를에 머물던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린 열다섯 점의 작품들 중 초기 작품입니다.

 

알리스캉은 샹젤리제의 프로방스식 호칭으로 이 마을은 오래된 도시 아를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작품의 중앙에는 어두운 색의 단정한 옷을 입고 있는 아를 지방 여인들의 작은 실루엣이 보입니다. 이는 1888년 12월 4일경에 반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이 작품을 보낼 때 <풍경, 또는 비너스 신전의 삼미신>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을 붙여서 이 여인들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상주의 화풍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녹아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세모꼴의 평면들이 한점으로 집중적으로 모이도록 세심하게 처리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기하학적 조화를 이루며 원근감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른쪽 윗부분에는 고갱이 임의적으로 선택한 색들로 채색되어 있는데, 특히 파란색으로 칠한 나무 줄기나 그가 일본 미술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주는 붉은 색의 관목들이 이루는 아라베스크적인 장식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 양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년, 보스턴 미술관 소장)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이 작품은 고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당시 그는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그리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갱은 열정에 사로잡혀 한 달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품에 몰두 하였습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남은 '모든 정력을 이 작품에 쏟아 부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의 3단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오른쪽 전경의 아기와 중아의 과일을 따고 있는 인물, 그리고 왼쪽 끝의 죽음을 앞둔 노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갱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이 수수꼐끼 같은 세계의 세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명상적으로 감상되고 경험되기를 원했으며, 그가 헛된 것이라 여기는 말로서 작품을 정의 내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백과 '폴 고갱'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백과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백과 '타히티의 여인들'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백과 '알리스캉 풍경'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백과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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